매해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현대 미국 문학의 거장 돈 드릴로의 최신간 미국과 동시 출간! 코로나 시대에 가장 먼저 도착한 문학의 위로 영미 유수 언론들이 꼽은 ‘올가을에 주목해야 할 책’ “우리는 모두 드릴로의 세계에 산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 “『침묵』은 소름 끼치게 현재와 공명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가디언』 토머스 핀천, 코맥 매카시, 필립 로스와 함께 미국 포스트모던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히며 해마다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돈 드릴로의 최신작 『침묵』이 10월 20일 ㈜창비에서 미국과 동시 출간되었다. 출간 몇달 전부터 팬데믹이 야기한 고립과 단절에 대한 놀라운 선견지명과 통찰을 담아냈다는 평과 함께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돈 드릴로는 2018년 “맨해튼의 텅 빈 거리에 대한 비전”으로 시작한 이 소설을 코로나바이러스로 그가 태어나 여전히 살고 있는 뉴욕이 봉쇄에 들어가기 몇주 전에 완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드릴로는 이전에도 『화이트 노이즈』(1985년 1월 출간) 제2부 ‘유독가스 공중유출 사건’을 통해 책 출간 한달 전에 일어난 인도 보팔 유독가스 누출 참사를 예견하는 듯한 통찰을 보여준 것을 비롯해 가까운 미래의 재난 상황을 핍진하게 그려낸 바 있어, 영미 언론에서 늘 그를 수식할 때 써온 ‘예언자적’ 면모가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 소설은 2022년 슈퍼볼(북미 프로미식축구리그 챔피언 결정전)이 열리는 일요일, 원인 모를 재앙적 사건으로 인해 모든 통신 및 전자 기기가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 모인 다섯 남녀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은퇴한 물리학과 교수 다이앤과 그녀의 미식축구광 남편 맥스, 아인슈타인에 사로잡힌 전 제자 마틴, 빠리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 짐과 테사 부부가 나누는 간결하면서도 아이러니하고 심오한 대화를 통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파고든다. 이전의 작품들과 현대문명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라는 주제의식을 같이하면서도, 어느 작품보다 친절해진 문체로 장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짧은 분량에 압축적으로 담아낸 돈 드릴로의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세계가 멈춰버린 날 암흑으로 변한 맨해튼의 아파트에 모인 다섯 남녀 2022년, 슈퍼볼이 열리는 2월의 첫 일요일. 짐과 테사 부부는 빠리 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친구인 다이앤과 맥스 부부의 집에 초대받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리로 가 함께 슈퍼볼을 시청할 계획이다. 지루한 장거리 비행 동안 짐은 모니터에 뜨는 각종 숫자들을 강박적으로 읽어대고 테사는 노트에 여행 기록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다. 사이사이 말장난 같은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착륙할 시간. 그런데 기체가 갑자기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한편 맨해튼의 아파트에서는 호스트인 다이앤, 맥스 부부와 다이앤의 옛 제자이자 고등학교 물리학 교사인 마틴이 초대형 텔레비전 앞에 앉아 슈퍼볼이 시작하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광고들이 이어지고 경기가 시작되려는 찰나, 텔레비전 화면이 갑자기 먹통이 된다. 휴대폰도, 집전화도, 노트북도,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공격? 외계인 침공? 반쯤 농담 삼아 원인을 추측하다가 맥스가 다른 집들의 상황은 어떤지 알아보러 잠시 나갔다 온다. 돌아온 그의 말로는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이웃들 역시 마찬가지 상황. 창밖으로 내다본 거리에는 슈퍼볼이 열리는 일요일답게 행인도 차도 없다. 소설 속 다이앤의 말대로 “자기 휴대폰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뜻밖의 재난 앞에 마비된 인간상 디지털 네트워크가 야기한 역설적 고립과 단절 드릴로는 현대 작가들 가운데서도 그 누구보다 우리의 삶이 과학기술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면서 인간 존재에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문학적 탐색을 계속해온 작가이다. 대표작 『화이트 노이즈』뿐만 아니라 『제로 K』(2016), 『코스모폴리스』(2003) 등 그의 여러 작품이 냉동인간, 신약, 정보통신기술 등 과학기술의 힘으로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나 불멸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 비극적 결과를 다루고 있다. 드릴로에게 기술은 『화이트 노이즈』의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말했듯이 “자연에서 유리된 욕망”이다. 그 욕망이 우리를 과연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가 드릴로가 소설 속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침묵』에서는 공기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우리 삶과 존재를 떠받치고 있던 디지털 네트워크가 갑자기 작동을 멈춘 상황이 그려진다. 하지만 이 갑작스러운 재앙으로 인한 죽음과 파괴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소설은 거리의 혼란보다는 맨해튼의 아파트에 모인 다섯 남녀, “잘못된 종류의 정상”에 처한 사람들의 즉각적 반응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은 함께 있지만 각자 고립되어 있다. 비행기 사고를 겪고 우여곡절 끝에 친구인 다이앤과 맥스의 집에 도착한 짐과 테사는 사고의 충격과 피로로 기진맥진해 있지만 한밤중에 전기도 끊긴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맥스는 상황을 알아보려고 이웃들과 처음으로 안면을 트고 거리를 돌아다녀보기도 하지만 속 시원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마틴은 아인슈타인의 원고에서 인용한 문장들을 비롯하여 온갖 말들을 쉬지 않고 쏟아놓지만 앞뒤 맥락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다. 사실 아파트에 모인 사람들은 마틴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다른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 ‘침묵’이라는 소설 제목이 무색하게 누군가가 끊임없이 떠들고 있지만 무의미한 독백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전세계 사람들을 유례없이 가깝게 연결해놓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도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역설적 단절을 초래했다. 수많은 개인이 소리 높여 혼잣말을 하는 듯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침묵』은 그런 디지털 네트워크가 일시에 사라졌을 때 찾아온 ‘침묵’의 시간을 힘겹게 선문답 같은 대화로, 독백에 가까운 읊조리는 말로, 때로는 그저 텅 빈 텔레비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응시로 채워나가는 인물들을 통해 파괴된 관계를 복원하는 것의 힘겨움을 보여준다. 노작가가 코로나 시대에 내놓은 문학적 응답 대재난의 한가운데에서 문득 찾아온 기묘한 위로 그러나 고립과 단절만이 전부는 아니다. 도무지 희망도 출구도 보이지 않는 듯한 이 냉정한 소설에서 독자들은 어느 순간 문득 기묘한 위안과 마주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짐과 테사 부부가 병원으로 향하는 밴의 창밖으로 유유히 홀로 조깅을 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안도감을 느낄 때, 병원 접수 담당 직원이 가벼운 공황 상태로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으면서 스스로 당황스러워하자 테사가 넌지시 “저희는 들으려고 여기 있는 거예요”라고 말할 때, 테사가 감았던 눈을 뜨고 작지만 여전히 확실하게 거기 있는 물건들—문진, 사진 액자, 장난감 택시—을 볼 때, 모두가 독백에 가까울지언정 각자의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비로소 꺼내놓기 시작할 때 찾아오는 작은 뭉클함은 지금의 우리 상황과 맞물려 더 큰 울림을 자아낸다. 이는 혹독한 시기를 견디고 있는 우리에게 80년을 넘게 살아온 노작가가 건네는 최선의, 거짓 없는 위로처럼 읽힌다. ‖ 해외 서평 우리 시대의 편집증과 공포를 탁월하게 재현해온 거장 드릴로는 그가 살아가는 시대의 분위기를 작품에 완전히 녹여낸다. 그 정점은 생존하는 어떤 작가들보다 활력이 넘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잘 쓴 부분들은 그가 표현했듯 “삶이 너무나 흥미진진해질 수 있기에 우리는 두려움도 잊는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뉴욕 타임스』 우리는 모두 드릴로의 세계에 산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드릴로는 갑자기 닥친 “잘못된 종류의 정상”처럼 느껴지는 새로운 현실에 처한 사람들의 절제된 공황 상태와 불안을 빼어나게 포착했다. 『인디펜던트』 『침묵』은 소름 끼치게 현재와 공명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단지 독자들이 소설에서 애타게 이메일을 읽으려 노력하지만 실패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엔 고요했다가 혼란이 시작되며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 휴대폰 없이 사는 것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사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는 수치스러운 생각. 곧 음모이론으로 기울어지는 풍문과 추정. 이 모든 것은 드릴로의 예술이 지닌 최소한의 한 측면인 ‘하드커버 사이의 수정구슬’이라는 면모를 기이하게 극대화한 것처럼 느껴진다. 『가디언』 공동의 상실, 그동안 우리가 의지해온 모든 것으로부터 갑작스레 우리를 갈라놓은 단절에 관한 풍자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명상록. 『침묵』은 돈 드릴로의 작품 전체를 하나로 흡수해서 수정으로 연마한 작품 같다. 레이철 쿠시너(소설가) 바이러스의 위험에 처한 독자들이 이 베일 듯 날카롭고도 부드럽게 쓸쓸하고, 재치 있고, 거의 종교적이며, 조용하게 동요를 일으키는 이야기를 읽는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의 침묵과 고립이 얼마나 재앙적인 것이 될 수 있는지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북리스트』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어떤 깊은 지점에 도달한다. 그 지점은 개인들이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지 선택하는 곳임을 강조해온 미국의 정수와 맞닿아 있다. 만약 당신이 갑자기 마법처럼 모든 디지털 기기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어떤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만약 당신에게 선택지가 있다면, 그걸 선택할 것인가? 『보스턴 글로브』 이 작품에는 내가 점차 좋아하게 된 드릴로의 다른 면모가 있다. 풍자가, 농담꾼, 현대적 경험의 부조리함에 절망하기보다 그것을 즐기는 관찰자로서의 드릴로 말이다. 『침묵』의 무표정한 문장들 뒤에는 우스꽝스러움이 가득하다. 『월 스트리트 저널』 ‖ 책 속에서 대양이나 드넓은 땅덩어리 위에서 보낸 모든 시간, 자기 안에 갇힌 토막난 문장, 승객, 조종 사, 승무원, 모든 단어 들은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여 비어 있는 이동식 탑승교를 향해 끝없는 이동을 시작하는 순간 잊힌다. 그만이 홀로 한밤중에 침대에서 그중 일부를 기억할 것이다. 항공사 담요를 둘둘 감고 죽은 듯이 잠든 사람들, 와인을 더 따라줄지 묻는 키 큰 승무원, 비행의 끝, 꺼지는 안전벨트 표시등, 해방의 느낌, 통로에 선 승객들, 기다림, 탑승구의 승무원들, 그들의 감사 인사와 끄덕이는 고개, 100만 마일짜리 미소. 18면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주는 거 잊지 말아야 해.” 50면 “반(半)어둠이에요. 대중의 마음속 어딘가에 있죠. 정지된 느낌, 전에도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는 느낌요. 자연재해 비슷한 것이거나 외국의 침략이랄까. 조부모님이나 증조부모님, 아니면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선대에게서 물려받은 경고성의 감각이죠.” 75~76면 게다가 어떤 개인들은 셧다운, 번아웃을 이미 받아들인 듯하니 이상하지 않은가? 부지불식간에, 원자보다도 더 미소(微小)하게 항상 그것을 열망해왔던 것일까? 항상 일부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태양으로부터 세번째 행성, 필멸의 존재의 영역인 지구 행성의 인간 거주자들 가운데 극소수는. 88면 Changbi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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